형제의 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1. 정의 [편집]
2. 롯데그룹 [편집]
3. 삼성그룹 [편집]
4. 효성그룹 [편집]
5. 금호아시아나그룹 [편집]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vs.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창업주 박인천의 작고 이후 장남, 차남까지 형제경영 전통을 문제없이 이어갔다. 2002년 박정구 회장이 폐암으로 작고하자 3남 박삼구가 회장직을 이어 받았는데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 인수에만 무려 10조원을 질러버린 어마어마한 M&A의 외형 확장, 두 회사를 인수했을 때 내건 풋옵션으로 인한 수많은 이자 발생, 그리고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자 4남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부문 회장과의 책임공방 법적 다툼이 발생하였다. 형제의 난의 그 다음 원인은 바로 박삼구 전 회장 본인에게 있는데, 원칙대로라면 박삼구는 그의 나이 65세인 2010년에 박찬구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줬어야 하지만, 아들 박세창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주려 했다.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형제들끼리 합의한 서류 내용을 수정해가며 갈등이 심화되었고, 대우건설 인수 당시 박찬구가 그룹의 위기를 우려해 형에게 강력히 만류하였으나 박삼구는 그릇이 작다며 묵살시켰다. 동생의 예언대로 금호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 되자 형제간의 치열한 갈등이 점화되었고, 도중에 박삼구가 독단적으로 박찬구를 해임시켜버렸고, 박찬구는 갑질과 무능한 경영을 그룹의 위기로 몰아붙인 형을 상대로 법적대응 및 가지고 있던 금호산업 등의 지분 처리, 조카와 손을 잡아 석유화학 부문을 떼어내어 계열분리를 했고 그것이 오늘날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재탄생했다. 이른바 7년이나 진행되었던 형제의 난.
창업주 박인천의 작고 이후 장남, 차남까지 형제경영 전통을 문제없이 이어갔다. 2002년 박정구 회장이 폐암으로 작고하자 3남 박삼구가 회장직을 이어 받았는데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 인수에만 무려 10조원을 질러버린 어마어마한 M&A의 외형 확장, 두 회사를 인수했을 때 내건 풋옵션으로 인한 수많은 이자 발생, 그리고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자 4남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부문 회장과의 책임공방 법적 다툼이 발생하였다. 형제의 난의 그 다음 원인은 바로 박삼구 전 회장 본인에게 있는데, 원칙대로라면 박삼구는 그의 나이 65세인 2010년에 박찬구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줬어야 하지만, 아들 박세창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주려 했다.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형제들끼리 합의한 서류 내용을 수정해가며 갈등이 심화되었고, 대우건설 인수 당시 박찬구가 그룹의 위기를 우려해 형에게 강력히 만류하였으나 박삼구는 그릇이 작다며 묵살시켰다. 동생의 예언대로 금호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 되자 형제간의 치열한 갈등이 점화되었고, 도중에 박삼구가 독단적으로 박찬구를 해임시켜버렸고, 박찬구는 갑질과 무능한 경영을 그룹의 위기로 몰아붙인 형을 상대로 법적대응 및 가지고 있던 금호산업 등의 지분 처리, 조카와 손을 잡아 석유화학 부문을 떼어내어 계열분리를 했고 그것이 오늘날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재탄생했다. 이른바 7년이나 진행되었던 형제의 난.
6. 두산그룹 [편집]
7. 현대그룹 [편집]
8. 한진그룹 [편집]
9. 한화그룹 [편집]
10. 기타 [편집]
[1] 작중 국왕의 자리에 오른 마그니는 동생들이 포기해 마지못해 하는 느낌이 강하고, 무라딘 역시 마그니가 석화되면서 마지못해 하는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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